티스토리 뷰

삼성전자 실적이 분기 100조 원에 육박한다는 소식이 나왔는데도 주가가 움직이지 않는 걸 보고, 저도 처음엔 뭔가 계산이 틀렸나 싶었습니다. 기업이 돈을 잘 버는데 주가가 안 간다는 현실은, 직접 시장을 들여다보기 전까지는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습니다. 자사주 매입이 끝나는 시점, 외국인 수급의 방향, 그리고 실적 발표 이후 시장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자사주 매입이 끝나면 주가는 어디로 가나
삼성전자는 2024년 하반기 약 10조 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진행했습니다. SK하이닉스도 40조 원 안팎의 자사주 매입을 통해 발행 주식 수를 줄이는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자사주 매입(Treasury Stock Buyback)이란 기업이 자기 회사 주식을 시장에서 직접 사들이는 행위로,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들어 주당 가치를 높이는 효과를 냅니다.
제가 이 시기 시장 흐름을 지켜보면서 느낀 건, 자사주 매입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사실상 '받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외국인들이 하루 1조 원 넘게 매도하는 날에도 주가가 크게 무너지지 않은 건, 자사주 매입이 그 물량을 꾸준히 흡수했기 때문입니다. 매일 1조 5천억~1조 6천억 원 규모의 현금 매수가 따박따박 들어오는 구조였으니, 팔고 싶은 사람 입장에서는 편하게 나올 수 있는 구간이었던 셈입니다.
문제는 자사주 매입이 끝난 이후입니다. 삼성전자는 10월 초 자사주 매입을 종료했고, SK하이닉스도 10월 중순이면 80%를 넘겨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습니다. 받아주던 수요가 사라지면 그 공백을 채울 새로운 매수세가 필요한데, 당시 예탁금 규모가 100조 원 안팎에 머물면서 유동성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예탁금(Customer Deposit)이란 투자자가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에 맡겨둔 대기 자금으로, 이 규모가 클수록 시장에 매수 여력이 많다는 의미입니다.
자사주가 끝나면 주가가 자생력을 발휘할 거라고 기대했는데, 받아주는 수요가 사라지는 그 순간을 외국인들도 정확히 읽고 있었습니다. 자사주 마지막 날을 앞두고 외국인 매도가 집중된 것도 바로 그 이유였습니다.
- 삼성전자 자사주 매입 규모: 약 10조 원 (2024년 하반기 기준)
- SK하이닉스 자사주 매입 규모: 약 40조 원 (발행 주식 3% 이상 소각 효과)
- 자사주 종료 후 수급 공백: 하루 약 1조 5천억~1조 6천억 원 규모의 매수 수요 소멸
- 예탁금 수준: 100조 원 안팎으로 대형주 견인에는 부족한 수준
실적 발표 앞두고 왜 주가는 반응하지 않았나
2024년 10월, 삼성전자 3분기 실적 발표가 임박했을 때 시장의 분위기는 묘하게 냉랭했습니다. 증권사 컨센서스(Consensus)는 영업이익 100조 원 전후를 예상했는데, 여기서 컨센서스란 여러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추정한 실적 전망치의 평균값을 말합니다. 쉽게 말해 시장이 이미 '100조 원은 나올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상황에서 주가가 움직이지 않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발표된 숫자는 과거 데이터이고, 주가는 항상 미래를 먼저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마이크론은 비슷한 시기 실적 발표 다음 날 3% 이상 오른 적이 있었는데, 핵심은 숫자 자체가 아니라 콘퍼런스 콜에서 "내년, 내후년이 더 좋다"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장기 공급 계약(LTA, Long-Term Agreement) 비율을 높여 향후 실적의 안정성을 직접 보여준 겁니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 부분에서 아쉬운 면이 있었습니다. SK하이닉스는 LTA 비율을 공개하지 않아 얼마나 안정적으로 매출이 유지될지 투자자들이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삼성전자는 약 60% 수준이라고 언급했지만, 발표 방식 자체가 투자자들의 기대감을 충분히 자극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시장 반응이 달라지는 것, 제가 실적 시즌마다 확인하는 부분입니다.
또 한 가지 변수는 2028~2029년 이후 공급 증가에 대한 우려였습니다. 삼성,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이 동시에 증설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이 2028년 후반 이후인데, 시장은 이미 그 이후를 걱정하면서 현재 실적을 낮게 평가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좋은 숫자를 보면서도 "이게 피크 아닐까"라는 의심이 주가 상승을 막는 구조였습니다. 이른바 '어닝 서프라이즈(Earnings Surprise)' — 실제 실적이 시장 예상치를 웃도는 것 — 가 나와도 미래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크면 주가가 오히려 제자리를 맴도는 아이러니가 생깁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수급이 돌아오려면 무엇이 바뀌어야 하나
9월 이후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20조 원 넘게 순매도를 기록했습니다. 말로는 "한국 시장이 너무 싸다, 코스피 12,000~15,000이 목표"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사주 매입이 들어오는 구간에 열심히 팔아나간 것입니다. 이른바 '말 따로, 행동 따로'의 전형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제가 이 흐름을 보면서 느낀 건, 외국인 수급이 돌아오는 건 시장이 좋아서가 아니라 시장이 좋아질 거라고 충분히 많은 사람이 믿을 때 시작된다는 점이었습니다.
밸류에이션(Valuation) 관점에서도 이상한 상황이 이어졌습니다. 밸류에이션이란 기업의 내재 가치 대비 현재 주가 수준을 평가하는 것으로, 보통 PER(주가수익비율)로 표현합니다. 당시 삼성전자의 PER은 10배 안팎으로, 분기 영업이익이 5~60억 원 수준인 일부 소부장 기업들의 PER 30~100배와 극단적인 대비를 이뤘습니다. 수십 배 비싼 중소형주는 오르고, 실적으로 검증된 대형주는 제자리인 이 구조는 유동성이 말라 있을 때 나타나는 전형적인 패턴입니다(출처: 한국거래소).
수급이 근본적으로 돌아오기 위한 조건은 결국 두 가지로 수렴됩니다. 하나는 HBM(High Bandwidth Memory, 고대역폭 메모리 — AI 연산에 최적화된 고성능 반도체로, 데이터 처리 속도가 일반 D램보다 수배 빠릅니다) 경쟁에서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을 실질적으로 가져오기 시작하는 신호, 다른 하나는 예탁금이 120조 원 이상으로 늘어나 대형주를 끌어올릴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문제지만, 제 경험상 이 두 조건 중 하나가 먼저 충족되면 나머지가 따라오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릅니다.
장기적으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전고점 회복 — 각각 38만 원대와 300만 원대 — 을 위해서는 시장 참여자들의 심리 변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본전에서 팔겠다는 투자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동안은 누가 그 물량을 받아줄 이유가 없습니다. 실적이 좋다는 팩트 위에 '이 가격이 싸다'는 확신이 더해질 때, 외부 수급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삼성전자 자사주 매입이 끝나면 주가가 무조건 빠지나요?
A. 반드시 그렇지는 않습니다. 자사주 매입 이전에도 주가는 오르기도, 내리기도 했습니다. 다만 매일 1조 5천억 원 안팎의 안정적인 매수 수요가 사라지면, 그 공백을 대신할 새로운 수급이 생겨야 주가가 버틸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유동성 수준과 외국인 매매 방향을 함께 확인하는 게 중요합니다.
Q. 삼성전자 실적이 100조 원을 넘어도 주가가 안 오르는 이유가 뭔가요?
A. 주가는 이미 알려진 현재 실적보다 앞으로의 이익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이어질지를 더 중요하게 봅니다. 2028년 이후 반도체 공급 증가와 가격 하락 가능성을 미리 반영하는 투자자들이 많으면, 아무리 좋은 분기 숫자가 나와도 주가가 반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컨퍼런스 콜에서 장기 성장 신뢰도를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단기 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Q.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중 어느 쪽이 더 오를 가능성이 높나요?
A. 단기적으로는 자사주 매입이 먼저 끝난 삼성전자가 수급 불확실성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면이 있습니다. 반면 목표주가 기준 상승 여력은 SK하이닉스 쪽이 더 크게 제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HBM 점유율 변화와 장기 공급 계약 비율 공개 여부가 두 기업의 주가 방향을 가르는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Q. 지금 삼성전자 물려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A. 제가 직접 겪어본 바로는, 용도와 기한이 정해진 자금으로 버티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입니다. 해당 자금에 다른 목적이 없다면 실적과 성장 방향성을 주기적으로 점검하면서 보유하는 전략이 현실적입니다. 단, '언젠간 오르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보다는 기업이 창출할 수 있는 이익 수준을 스스로 확인하는 습관이 중요합니다.
결론
이번 흐름을 지켜보면서 다시 한번 확인한 건, 좋은 실적과 오르는 주가는 자동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사주 매입이 만들어 준 완충 구간, 외국인의 말과 행동 사이의 간극, 미래 실적에 대한 불확실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시장이었습니다. 기업의 숫자를 확인하는 것만큼, 그 숫자를 둘러싼 수급과 심리의 흐름을 함께 읽는 게 필요하다는 걸 제 경험상 다시 느꼈습니다.
앞으로 실적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저는 발표된 영업이익보다 콘퍼런스 콜에서 경영진이 미래를 어떤 언어로 말하는지를 더 주의 깊게 확인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예탁금 수준과 외국인 순매수 흐름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같이 살펴보는 것, 그게 지금 이 시장에서 제가 유지하고 있는 기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