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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전쟁으로 유가가 오른다는 뉴스를 본 어느 날 주유소에서 카드를 긁는데 청구 금액이 예전과 달라서 멈칫했고, 그때부터 국제유가가 뉴스 속 숫자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촉발된 유가 급등락이 올해 상반기 기업 실적을 어떻게 흔들었는지, 정유사부터 항공사, 석유화학까지 직접 따져봤습니다.
출퇴근 비용이 달라졌던 날, 그리고 래깅 효과
기름값이 오른다는 뉴스를 들을 때마다 '조금 더 내겠지' 하고 넘겼습니다. 그런데 매일 차로 출퇴근하다 보니 주유할 때마다 들어가는 돈이 서서히, 그러다 어느 순간 확연하게 달라졌습니다. 결국 제가 선택한 건 셔틀버스였습니다. 편의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매일 반복되는 주유비를 줄이는 게 낫겠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 경험을 하고 나서야 유가라는 게 어디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이 유가 변동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올해 이란 전쟁 직전 브렌트유는 배럴당 67~68달러 수준이었습니다. 3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이후 유가는 급등해 3월 20일 전후로 배럴당 112달러까지 치솟았습니다. 이후 6월 들어 미국이 공습을 중단하고 양해각서를 체결하면서 7월 초에는 70달러 수준까지 급락했습니다. 이 롤러코스터가 기업 실적의 명암을 갈랐습니다.
이 맥락에서 꼭 짚어야 할 개념이 래깅 효과(Lagging Effect)입니다. 여기서 래깅 효과란 원자재를 구매한 시점과 실제로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시점 사이에 시차가 생기면서 그 차이로 이익이나 손실이 발생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중동산 원유가 한국에 도착하려면 약 40일, 아프리카산은 두 달 가까이 걸립니다. 배 위에 원유가 실려 오는 동안 유가가 오르면 이익이 생기고, 반대로 떨어지면 손실이 생기는 구조입니다. 시장에서는 이 래깅 효과를 두고 '래깅 치트키'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익을 자력으로 만든 게 아니라 시차 덕분에 생긴 이익이기 때문입니다.
정유사 실적, 왜 1년 만에 하늘과 땅이 됐나
국내 정유 4개 사인 SK에너지, S-OIL, GS칼텍스, HD현대오일뱅크는 원유를 사 와서 정제한 뒤 휘발유, 경유, 윤활기유 같은 제품으로 만들어 팝니다. 이들 4개 사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을 합산하면 5조 845억 원입니다. 놀라운 건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60억 원 적자였다는 점입니다. 흑자 전환도 아니고 1년 만에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된 겁니다.
이게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위에서 설명한 래깅 마진(Lagging Margin)입니다. 여기서 래깅 마진이란 원유를 구매한 가격보다 정제 제품의 판매 가격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시차 이익을 말합니다. 유가 급등 전에 배럴당 60달러대에 사놓은 원유가 배로 실려 오는 40~60일 사이에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서면, 정유사는 싸게 산 원유로 비싸진 정제품을 팔게 되는 겁니다. 이걸 두고 업계에서는 'refiners enjoy strong lagging margins'라는 표현을 씁니다.
여기에 지정학적 호재까지 겹쳤습니다. 중동 정제 시설이 전쟁으로 타격을 받으면서 항공유와 등유 가격이 폭등했고, 우리나라는 정제 제품 생산 케파(생산능력) 기준으로 전 세계 5위입니다(출처: 산업통상자원부). 게다가 우크라이나가 드론으로 러시아 정제 시설을 공격하자 러시아가 7월부터 디젤 수출을 금지하면서 한국 정유사의 경쟁력이 더 부각됐습니다. 뉴질랜드처럼 정제 제품을 자체 생산하지 않는 국가들이 한국산 제품을 찾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2분기로 가면서 역래깅(Reverse Lagging)이 발생합니다. 역래깅이란 래깅 효과의 반대로, 고점에서 비싸게 원유를 사놨는데 오는 도중 유가가 급락하면서 손실이 발생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제가 들은 내용은 정유사 관계자가 "지금 배에 실려 오는 원유를 차라리 배 째 팔고 싶다"는 말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만큼 하반기 전망이 긴장된다는 얘기입니다. 여기에 담합 의혹으로 검찰이 일부 정유사를 법원에 넘긴 건, 그리고 정부의 최고 가격 상한제로 인한 손실 보전 문제까지 겹쳐 있습니다.
- 정유 4사 2025년 1분기 합산 영업이익: 5조 845억 원
- 지난해 같은 기간 영업이익: 60억 원 적자
- 한국 정제 제품 생산 능력: 전 세계 5위, 절반 이상 수출
- 러시아 디젤 수출 금지(7월~): 한국 정유사 추가 수혜
- 하반기 리스크: 역래깅 손실, 담합 소송, 최고가격 상한제 보전 문제
대한항공, 매출은 역대급인데 왜 적자가 났을까
지인이 신혼여행 항공권을 알아보다가 유류할증료 때문에 생각보다 비용이 많이 나온다며 고민하던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때는 '항공권 가격이야 원래 비쌀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대한항공 실적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그 유류할증료가 얼마나 복잡한 구조 속에 있는지 이해하게 됐습니다.
대한항공의 올해 2분기 별도 기준 매출은 5조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5.9% 증가했습니다. 이건 항공업계 비수기인 4~6월 기준으로 역대 최고 매출입니다. 왜 이렇게 매출이 뛰었을까요? 이란 전쟁으로 카타르항공, 에미레이츠항공, 에티하드항공 같은 중동 3대 항공사가 하늘길이 막히면서 아예 운항을 중단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두바이를 경유해 유럽으로 가던 승객들이 대한항공으로 몰렸고, 2분기 여객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500억 원 늘었습니다. 반도체 수출 호황도 한몫했습니다. 반도체는 정밀 부품 특성상 배가 아닌 비행기로만 운송하기 때문에, 반도체 수출이 늘면 항공 화물 수요도 함께 올라갑니다.
그런데 제가 처음에 "웃기도 했지만 울기도 했다"고 표현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2분기 영업이익은 매출과 반대로 줄었습니다. 단기 순손실은 973억 원으로 적자 전환입니다. 원인은 유가입니다. 대한항공의 전체 영업비용 중 항공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내외입니다.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약 450억 원의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입니다(출처: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올해 2분기 대한항공의 연료비는 작년 동기 대비 1조 원 늘었습니다.
여기에 고환율 문제까지 겹칩니다. 항공 산업은 항공유 구매, 항공기 리스료, 정비비까지 사실상 모든 주요 비용을 달러로 지급합니다.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약 550억 원의 장부상 손실이 발생합니다. 대한항공은 리스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아 그나마 방어가 됐지만, LCC(저비용항공사)들은 비행기의 거의 100%가 리스여서 상반기에 운항 편수를 대거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경케미컬, 같은 업종 다른 생존법
기업 실적을 볼 때 영업이익 숫자 하나만 보고 판단하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롯데케미컬이 그 이유를 잘 보여줍니다. 이 회사는 올해 1분기 영업이익 735억 원으로 흑자를 냈습니다. 10개 분기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실적 발표가 난 5월 12일 당일, 주가가 무려 22% 급락했습니다. 시장이 "이 흑자는 래깅 효과 때문이지 진짜 실력이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래깅 효과를 제거하면 여전히 적자라는 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롯데케미컬이 만드는 건 나프타(Naphtha)를 열분해 해서 생산하는 범용 올레핀(Olefin) 계열의 플라스틱 원료입니다. 여기서 나프타란 원유를 정제할 때 나오는 중간 유분으로, 석유화학 제품의 주된 원료가 됩니다. 이 범용 화학 제품은 중국이 엄청난 물량으로 과잉 생산을 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입니다. 거기에 경쟁사인 S-OIL이 샤인(Shaheen) 프로젝트를 가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샤인 프로젝트란 중동에서 들어온 원유를 직접 연결해 기존보다 약 30% 저렴하게 올레핀을 대량 생산하는 설비를 말합니다. 중국 저가 공세에 국내 경쟁사 물량까지 겹치면서 롯데케미컬의 업황은 이중으로 압박받고 있습니다.
반면 같은 석유화학 계열이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기업이 있습니다. 바로 애경케미칼입니다. 규모 면에서는 롯데케미컬과 비교가 되지 않는 작은 회사지만, 주력 제품이 고부가 특수화학 제품인 TPC(테레프탈로 일클로라이드)입니다. TPC란 강철보다 강한 섬유로 알려진 아라미드의 원료로, 방탄복, 전기차 타이어 코드, AI 데이터센터 케이블 등에 쓰이는 고성능 소재입니다. 이 소재는 중국에서 수입할 경우 운송 도중 고체화돼 다시 액체 화하는 공정이 필요해 가격 경쟁력이 구조적으로 낮아집니다. 자체 생산하면 그 비용이 사라지기 때문에 중국 저가 공세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습니다. 제가 이 사례에서 인상적으로 봤던 부분은, 불황의 늪에 빠진 업종 안에서도 어디에 집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래깅 효과가 정확히 뭔가요? 왜 정유사에 유리한가요?
A. 래깅 효과란 원유를 구매한 시점과 정제 제품을 판매하는 시점 사이에 생기는 시차 때문에 이익이나 손실이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중동산 원유는 한국에 도착하는 데 40일, 아프리카산은 약 두 달이 걸립니다. 이 기간에 유가가 오르면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정유사에 유리합니다. 반대로 유가가 떨어지면 손실이 생기는데, 이걸 역래깅이라고 합니다.
Q. 대한항공 매출이 역대 최고인데 왜 적자가 난 건가요?
A. 매출과 이익은 다른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대한항공은 중동 항공사 운항 중단의 반사이익으로 여객과 화물 매출이 크게 늘었지만, 항공유 비용이 작년 동기 대비 1조 원 증가했습니다. 여기에 고환율로 달러 부채 부담까지 늘어나면서 영업비용이 매출 증가분을 초과했습니다. 몸집은 커졌는데 실제 손에 남는 돈은 오히려 줄어든 겁니다.
Q. 롯데케미칼이 흑자를 냈는데 주가가 왜 22%나 떨어졌나요?
A. 시장이 흑자의 '질'을 따진 결과입니다. 롯데케미칼의 1분기 흑자는 유가 급등으로 인한 래깅 효과 덕분이었는데, 이 일시적인 요인을 제거하면 여전히 적자라는 게 드러났습니다. 투자자들은 진짜 경쟁력에서 나온 이익이 아니라고 판단했고, 그게 주가에 반영된 겁니다. 이 사례가 기업 실적을 볼 때 이익의 원천을 함께 봐야 한다는 이유입니다.
Q. 한국이 정유 제품 수출 5위라는 게 사실인가요?
A. 맞습니다. 한국은 원유 한 방울 나지 않지만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에 이어 정제 제품 생산 능력 기준으로 세계 5위입니다. 특히 이 5개국 중에서 생산한 정제 제품의 절반 이상을 수출하는 국가는 한국이 거의 유일합니다. 중동 정제 시설이 전쟁으로 타격받거나 러시아가 디젤 수출을 금지할 때마다 한국 정유사의 수출 경쟁력이 부각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결론
제가 셔틀버스를 타게 만든 기름값, 지인의 신혼여행 예산을 흔든 유류할증료, 정유사의 5조 흑자와 대한항공의 1조 연료비 증가. 이게 전부 같은 사건에서 출발했습니다. 국제유가 하나가 움직이면 어떤 기업은 이익을 보고, 어떤 기업은 비용 부담에 짓눌리고, 소비자는 교통비나 여행비 형태로 그 변화를 떠안습니다.
제가 이번 내용을 정리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좋은 실적이 나왔다는 사실보다 그 이익이 어디서 왔는지를 따지는 게 더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래깅 효과처럼 일시적인 요인이 이익의 원천이라면, 그다음 분기에 역래깅이 기다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롯데케미칼의 사례처럼 말입니다. 경제 뉴스에서 '유가 변동'이라는 단어를 보게 된다면, 그 숫자가 어느 기업에는 기회로, 어느 기업에는 위기로, 그리고 어떤 경로로 제 지출에 연결되는지까지 한 번쯤 따라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