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평택에 살다 보면 고덕신도시와 브레인시티 쪽 공급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됩니다. 새 아파트가 그렇게 많이 들어서는데도 집값이 단순하게 내려가지 않는 걸 직접 보면서, 공급만 늘리면 집값이 잡힌다는 말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라는 걸 체감했습니다. 정부가 내놓은 8·13 부동산 대책도 결국 같은 맥락입니다. 23만 가구 이상 공급에 PF 금융지원까지 얹었는데, 이게 진짜 집값을 잡을 수 있는 구조인지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급의 역설 — 대규모 지속 공급만이 집값을 잡는다

단순하게 생각했을 때 새 아파트가 많이 지어지면 당연히 집이 남아돌고, 가격이 떨어지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고덕신도시에 아파트 단지가 계속 들어서던 시기에 실제로 미분양 물량이 나오는 것도 봤고, '이 정도면 가격이 좀 꺾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실거래가를 찾아보면 그게 그렇게 단선적으로 움직이지 않더군요.

국내 부동산 시장을 35년 장기로 분석하면 집값 안정기는 딱 두 차례뿐이었습니다. 1991년부터 약 5년, 그리고 2006년 이후 약 8년입니다. 이 두 시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1기 신도시인 분당·일산·평촌 등지에서 1991년부터 1996년까지 29만 2,000가구가 집중 공급됐고, 이후 판교·광교·동탄·김포한강 등 2기 신도시에서도 30만 가구 이상이 연이어 공급됐습니다. 규모도 컸고, 기간도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핵심 개념이 등장합니다. 바로 '매수자 우위 시장'입니다. 매수자 우위 시장이란 공급이 수요를 초과해서 집을 팔려는 사람끼리 경쟁이 붙고, 결과적으로 구매자가 더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는 시장을 말합니다. 1기 신도시 수준의 물량이 지속적으로 쏟아졌을 때만 이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반대로 '찔끔 공급', 즉 소규모 단속적인 공급은 서울 집값에 다른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2018년 말 입주한 헬리오시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9,500가구 이상이 한꺼번에 풀리면서 인근 전세가가 잠깐 흔들리긴 했지만, 불과 몇 달 만에 분양가 8억 7천만 원이던 전용 84㎡ 매물이 15억 2천만 원까지 올라섰습니다. 인근 잠실 리센츠도 같은 시기 한 달 사이에 2억 원이 뛰었고, 잠실 엘스 전용 84㎡도 한 달 만에 1억 원이 올랐습니다.

정비사업, 즉 재개발·재건축으로 인한 공급은 조합원이 시행 주체라는 구조적 특성이 있습니다. 조합원은 공급자이면서 동시에 수익 극대화를 원하는 수요자입니다. 이 때문에 분양가를 최대한 높이려 하고, 그 분양가가 인근 구축 단지에 일종의 '가격 가이드라인'을 심어줍니다. 이주비 대출이 나오면 주변 전세가를 끌어올리고, 대체주택 비과세 특례를 활용해 이주자들이 다른 아파트를 매수하면서 수요를 추가로 만들기도 합니다. 올해 흑석 11구역 분양 이후 인근 가격이 움직인 것도, 신림이구역 착공 냄새가 나자 주변 매물 호가가 달라진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출처: 국토연구원이 2010년부터 2019년까지 부동산 시장을 분석한 보고서에는 "전국 단위로는 공급이 시장 변동성에 영향을 미치지만, 서울 집값은 공급이 아닌 주택 수요가 영향을 미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대규모·지속적 공급이 수요를 충분히 흡수할 만큼 넘쳐날 때만 효과가 있고, 찔끔 공급은 생각보다 시장 안정에 기여하지 못한다는 분석입니다.

  • 집값 안정기는 35년간 딱 두 차례, 모두 30만 가구 수준의 대규모·지속 공급 때
  • 헬리오시티 9,500가구 공급 후 전용 84㎡ 분양가 8.7억 → 7개월 만에 15.2억으로 상승
  • 재개발·재건축 조합원은 공급자이자 수익 극대화를 원하는 수요자로 분양가 상승을 유도
  • 국토연구원 분석: 서울 집값은 공급보다 주택 수요가 더 큰 영향을 미침
요약: 공급 확대가 집값을 잡으려면 1기 신도시 수준의 대규모·지속적 물량이 전제돼야 하며, 소규모 정비사업 중심의 찔끔 공급은 오히려 주변 시세를 끌어올리는 구조적 역설을 만든다.

 

PF 금융지원의 함정 — 땅값 조정을 막으면 집값도 못 내린다

8·13 대책에서 제가 가장 오래 들여다본 부분은 PF 금융지원 확대였습니다. 처음에는 건설사가 쓰러지면 건설 노동자부터 금융기관까지 연쇄 피해가 생기니까 당연한 대책처럼 읽혔습니다. 그런데 구체적인 숫자와 구조를 파고들수록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정부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보증을 올해 23조 원, 내년 33조 원 집중 공급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란 토지를 담보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사업의 미래 수익을 근거로 자금을 조달하는 금융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땅 사서 아파트 짓겠다는 계획만 가지고 대출을 끌어오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PF 정상화 펀드 3조 원을 마중물로 써서 신디케이트론 5조 원과 금융권 자체 펀드 10조 원을 추가 편성하겠다고 했습니다. 신디케이트론이란 단일 금융기관이 아니라 은행·보험사 등 여러 금융기관이 공동으로 대출을 실행하는 방식으로, 대규모 자금 조달이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이 구조의 핵심 문제는 땅값에 있습니다. 출처: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PF 사업비에서 토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에 달합니다. PF 사업장을 살린다는 것은 결국 그 땅의 가격을 현재 수준에서 유지시킨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부실 사업장을 그대로 뒀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는 실제 사례로 확인됩니다. 강원도의 한 주상복합 개발 PF 사업장은 2022년 6월 LH에서 2,958억 원에 토지를 낙찰받았습니다. 그런데 사업성이 나오지 않아 사업이 장기 표류하다가 결국 경공매로 넘어갔고, 같은 땅이 약 1,400억 원에 낙찰됐습니다. 무려 52%가 떨어진 것입니다. 이게 바로 시장이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토지 가격이 수요에 맞는 수준으로 조정되면, 그다음 사업자는 낮아진 땅값을 기반으로 더 현실적인 분양가로 공급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던 지역인 평택 고덕이나 브레인시티 미분양 사례를 보면서 느낀 것도 비슷했습니다.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차이가 크거나 실수요가 따라오지 않으면 아무리 공급을 늘려도 가격 조정은 생각보다 더디게 일어났습니다. 결국 땅값이 현실화되지 않으면 그 위에 지어지는 아파트 분양가도 낮아질 이유가 없습니다.

레고랜드 사태 당시 정부가 50조 원 규모 시장 안정 자금을 투입하고 그중 10조 원을 PF에 집어넣은 뒤 대치동 아파트 전용 76.8㎡ 1층 물건이 17억 7천만 원에서 1년여 만에 24억 3천만 원까지 회복된 흐름은 이 메커니즘을 잘 보여줍니다. 2022년 당시 금융시장이 갑작스럽게 얼어붙어 정상 사업장까지 자금이 막히는 상황을 막은 것은 필요한 조치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은 그런 긴급 상황이 아니라 '공급 확대'라는 명분으로 사업성이 낮은 PF 사업장에 계속 산소를 공급하는 구조에 더 가깝습니다. 시장이 스스로 조정해야 할 땅값을 계속 떠받치면, 정작 공급 확대를 통해 집값을 낮추려는 정책 목표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요약: PF 금융지원은 부실 사업장의 땅값 조정을 막아 오히려 분양가 하락 기회를 차단하며, 진짜 공급 확대 효과를 내려면 '몇 채 짓느냐'가 아닌 '어떤 가격으로 짓느냐'가 먼저 논의돼야 한다.

 

자주 묻는 질문

Q. 공급을 많이 하면 집값이 내려가는 거 아닌가요?

A.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1기·2기 신도시처럼 30만 가구 수준의 대규모·지속적 공급이 이뤄질 때는 집값 안정 효과가 실제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정비사업 중심의 소규모 공급은 분양가 상승을 유도하고 주변 시세를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토연구원 분석에서도 서울 집값은 공급보다 수요가 더 결정적인 변수로 나타났습니다.

 

Q. PF 금융지원을 하면 왜 집값이 오를 수 있다는 건가요?

A. PF 사업비의 약 60%는 토지비입니다. 사업성이 떨어지는 PF 사업장에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면 해당 토지가 경공매 등을 통해 낮은 가격으로 재조정될 기회가 사라집니다. 땅값이 높게 유지되면 그 위에 짓는 아파트 분양가도 내려오기 어렵고, 결과적으로 주변 집값 하락을 막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Q. 그러면 정부가 PF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요?

A. 무조건 개입하지 말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2022년 레고랜드 사태처럼 금융시장 자체가 얼어붙어 정상 사업장까지 자금이 막히는 상황이라면 개입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긴급 유동성 지원과 사업성이 낮은 사업장을 장기적으로 떠받치는 것을 구분하지 않고 묶어서 시행할 때입니다. 어떤 사업장을 살리고, 어떤 사업장은 시장 조정에 맡길지 기준을 명확히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Q. 서울 아파트 집값은 왜 공급을 해도 계속 오르는 건가요?

A. 집값은 금리, 입지, 학군, 교통, 재건축 기대, 시장 심리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서울처럼 수요가 집중된 시장에서는 공급이 소규모이거나 단속적으로 이뤄질 경우 이 수요를 분산시키기 어렵습니다. 국토연구원 보고서에서도 서울 집값 변동의 핵심 변수는 공급보다 수요라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Q. 진짜 집값 안정에 필요한 공급 정책은 어떤 방향인가요?

A. '몇 만 가구를 짓겠다'는 숫자보다 '어떤 가격으로 짓겠느냐'가 먼저 논의돼야 합니다. 토지 가격이 시장에서 적정 수준으로 조정될 여지를 만들고, 그 위에서 실수요자가 감당 가능한 분양가를 설계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그래야 공급 확대가 집값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와 실제로 연결됩니다.

 

결론

평택에서 고덕과 브레인시티의 공급과 미분양을 직접 보면서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공급이 많다'는 말 하나로 집값을 설명하기에는 시장이 너무 복잡합니다. 공급의 규모와 지속성, 실수요가 있는 입지인지, 분양가가 주변 시세와 어떻게 연결되는지까지 같이 봐야 합니다.

정부가 공급 확대를 선언할 때 PF 금융지원을 함께 묶는 방식은 구조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합니다. 시장이 스스로 조정해야 할 땅값을 계속 지탱하면, 그 위에 올라오는 분양가도 현실화되기 어렵습니다. 공급 확대 정책의 진짜 출발점은 아파트를 몇 채 짓느냐가 아니라 어떤 가격으로 시장에 공급하느냐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동산 정책을 볼 때 발표된 숫자 너머의 구조를 함께 들여다보는 것, 그게 지금 가장 필요한 시선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Nk8vlTeM1R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