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솔직히 저는 기업이 망하는 과정이 드라마틱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의 명백한 실수, 혹은 터무니없는 결정이 있을 거라고요. 그런데 JTBC 중앙그룹, 홈플러스, 롯데건설 세 사례를 들여다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무너지는 기업들에는 이상할 정도로 닮은 지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성장하는 동안 위험도 함께 키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성장의 함정 — 잘 나갈 때 심어둔 시한폭탄

제가 이 세 사례를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회사들, 사실 꽤 잘하던 곳들 아닌가"였습니다. JTBC의 콘텐츠 자회사 SLL은 2020년에 <이태원 클래스>, <부부의 세계> 같은 드라마를 연달아 흥행시키며 당시 업계 매출 1위를 기록했습니다. 2021년 매출이 5,588억 원에 달했고, 기업가치는 1조 6천억 원대로 평가받았습니다. 홈플러스도 MBK파트너스가 인수하던 2015년 당시 전국 알짜 요지에 146개 매장을 두고 탄탄한 유통망을 갖춘 회사였습니다.

문제는 그 성장이 영원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구조를 짰다는 점이었습니다. SLL은 투자자로부터 4,000억 원을 받으면서 "3+1+1", 즉 최장 2026년 3월까지 반드시 상장하겠다는 조건에 서명했습니다. 이 풋옵션(Put Option)이 문제였습니다. 풋옵션이란 투자자가 특정 조건 미달 시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합니다. 상장이 실패하면 4,000억 원에 연 2.9% 이자를 붙여 반환해야 하는 시한폭탄을 안고 출발한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2021~2022년을 기점으로 OTT 경쟁이 격화되면서 드라마 한 편당 제작비가 9억 원 수준에서 30억 원 이상으로 급등했습니다. 이른바 콘텐츠 제작비 인플레이션입니다. SLL은 그 사이 22년 602억, 23년 516억, 24년 312억 적자를 이어갔고, 상장은 끝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제가 보기에 SLL을 무너뜨린 건 콘텐츠 실력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성장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제로 맺은 계약 구조 자체였습니다.

  • SLL 기업가치 전성기 1조 6천억 원 → 상장 실패 후 투자금 반환 위기
  • 드라마 제작비: 2016년 회당 9억 원 → 2020년대 회당 30억 원 이상으로 급등
  • 풋옵션 미이행 시 4,000억 원 + 이자 반환 의무 발생
  • 22~24년 3년 연속 수백억 규모 적자 릴레이
요약: SLL의 몰락은 콘텐츠 실패가 아니라 시장 변화와 맞물린 상장 조건 계약 구조가 결정적 원인이었습니다.

 

레버리지의 역습 — 빌린 돈이 족쇄가 될 때

홈플러스와 롯데건설 사례를 들여다볼 때 저는 매출이나 점포 수보다 현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먼저 봤습니다. 그랬더니 두 곳 모두에서 같은 패턴이 보였습니다. LBO(Leveraged Buyout), 즉 차입인수 구조였습니다. LBO란 인수 대상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대출을 끌어와 기업을 사는 방식입니다. 자기 돈을 최소화하고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는 금융 기법이지만, 업황이 꺾이는 순간 이자 부담이 기업을 짓누르는 족쇄로 돌변합니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테스코로부터 홈플러스를 7조 2천억 원에 인수했습니다. 이 중 71%에 해당하는 약 5조 원을 차입으로 조달했습니다. 문제는 인수 직후부터 대형마트 업황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쿠팡 로켓배송(2014), 마켓컬리 새벽배송(2015), 다이소 연매출 1조 돌파(2015)가 모두 같은 시기에 겹쳤습니다. 홈플러스 영업이익은 2016년 3,000억 원대에서 2022년 -2,000억 원대 적자로 급전직하했습니다.

제가 직접 수치를 비교해보니 상당히 충격적이었습니다. 2016년부터 2023년까지 8년간 홈플러스가 영업으로 번 돈은 4,713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이자비용으로 나간 돈은 2조 9,329억 원이었습니다. 번 돈의 여섯 배를 이자로 갚아야 했다는 뜻입니다(출처: 금융안정위원회 관련 자료 참조). 결국 홈플러스는 이익 나는 매장까지 팔아 원금을 메웠고, 146개였던 매장은 현재 67개로 줄었습니다. 팔고 나서 다시 임차로 들어가는 세일 앤 리스백(Sale and Leaseback) 방식을 택했는데, 이 임대료도 연 8%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롯데건설은 조금 다른 경로이지만 결론은 같습니다. 부동산 PF(Project Financing), 즉 특정 개발사업을 담보로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에서 롯데건설의 우발채무 규모가 3조 1,537억 원에 달합니다. 우발채무란 지금 당장 갚아야 할 빚은 아니지만 특정 조건이 충족되면 갚아야 하는 잠재적 부채입니다. 이 금액이 롯데건설 자기 자본의 99%에 해당한다는 점이 무서웠습니다. 저금리 시대에는 이 구조가 문제없어 보였습니다. 2016년 기준금리가 1.25%, 2020년 코로나 시기엔 0.5%까지 내려갔으니까요(출처: 한국은행 기준금리 통계). 그 시절에는 건설사도 증권사도 시행사도 모두 각자의 이익에 충실했을 뿐이었습니다. 금리가 오르고 분양 시장이 멈추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위험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요약: LBO와 부동산 PF는 저금리 호황기엔 효율적 도구지만, 업황이 꺾이면 이자 부담이 본업을 압도하는 족쇄가 됩니다.

 

현금흐름으로 보는 기업의 진짜 체력

이 세 사례를 보면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결국 "감당할 수 있는 성장인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기업을 평가할 때 매출 규모나 자산 총액보다 실제 현금흐름(Cash Flow)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들어오는지가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셈입니다. 현금흐름이란 일정 기간 동안 기업에 실제로 들어오고 나간 돈의 흐름을 말합니다.

MBK의 초기 성공 사례들이 그 차이를 잘 보여줍니다. 오렌지라이프(생명보험)는 매달 보험료라는 안정적 현금이 들어왔고, 코웨이(정수기 렌탈)는 경기와 무관하게 월 렌탈료가 꾸준히 유입됐습니다. 두 곳 모두 LBO를 써도 이자를 충당하고 남는 구조였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었습니다. 반면 홈플러스는 온라인 쇼핑이라는 구조적 변화 앞에서 현금 창출력 자체가 흔들렸고, 거기에 막대한 차입 이자까지 얹혔으니 버티기 어려웠습니다.

제 경험상 기업을 볼 때 "얼마나 크게 성장했는가"보다 "그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감당하고 있는가"를 먼저 봐야 한다는 생각이 이번에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JTBC 중앙그룹도 콘텐츠를 못 만들어서 무너진 게 아닙니다. 올해 초 SLL이 만든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돌파했고, <흑백요리사> 같은 히트작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성공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믿고 그 전제 위에 계약 구조를 쌓아 올린 것이었습니다.

롯데건설과 부동산 PF 구조를 보면 이 문제가 한 회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해집니다. 전체 부동산 PF 익스포저(Exposure)가 177조 원에 달하고, 이 중 부실 우려 자산만 18조 원으로 추정됩니다. PF 익스포저란 금융기관이 부동산 개발사업에 물려 있는 총 대출·보증 규모를 말합니다. 건설사, 시행사, 증권사, 금융기관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한 고리가 끊어지면 연쇄 충격이 퍼질 수 있는 구조입니다.

요약: 기업의 진짜 체력은 성장 속도가 아니라 상황이 나빠졌을 때 이자와 고정비를 감당할 수 있는 현금흐름에서 드러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JTBC 중앙그룹은 왜 기업회생 신청까지 하게 된 건가요?

A. 핵심은 SLL 상장 실패입니다. 2021년 투자자로부터 4,000억 원을 유치하면서 2026년 3월까지 상장을 완료하겠다는 조건을 달았는데, 콘텐츠 시장 침체와 제작비 급등이 맞물려 IPO가 끝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상장 실패로 이자까지 붙은 투자금 반환 의무가 생겼고,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로 번진 것입니다. 여기에 월드컵·올림픽 중계권 배팅 손실 약 1,000억 원이 추가 악재로 작용했습니다.

 

Q. 홈플러스 LBO가 왜 문제가 됐나요?

A. LBO(차입인수)는 인수 대상 기업 자산을 담보로 빚을 끌어다 기업을 사는 방식입니다. MBK는 홈플러스 인수 금액 7조 2천억 원의 71%를 차입으로 조달했는데, 인수 직후부터 쿠팡·마켓컬리 등 이커머스가 본격 성장하면서 홈플러스 영업이익이 급격히 줄었습니다. 버는 돈보다 이자로 나가는 돈이 훨씬 많아지면서 매장을 팔아 빚을 갚는 악순환이 반복됐고, 결국 파산 수순에 이르렀습니다.

 

Q. 롯데건설 우발채무 3조 원이 왜 그렇게 위험한 건가요?

A. 우발채무는 지금 당장 갚아야 할 돈은 아니지만, 보증을 선 사업장이 부실화되면 롯데건설이 대신 갚아야 하는 잠재적 빚입니다. 이 금액이 자기자본의 99%에 달한다는 뜻은 최악의 경우 회사의 전 재산을 털어도 겨우 메울 수 있는 규모라는 의미입니다. 부동산 개발 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브릿지론(삽뜨기 직전 단계 대출) 만기가 도래하면 연쇄 부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주목받고 있습니다.

 

Q. 사모펀드가 기업을 인수하면 항상 이런 문제가 생기나요?

A.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MBK의 초기 투자 사례인 오렌지라이프나 코웨이는 안정적인 현금흐름이 있는 업종이었기 때문에 LBO를 활용해도 이자를 충당하고도 남았습니다. 문제는 현금흐름이 불안정하거나 업황이 빠르게 변하는 업종에 같은 방식을 적용할 때입니다. 결국 기업이 아니라 그 기업의 현금 창출 구조를 먼저 봐야 한다는 것이 이 사례들이 주는 교훈입니다.

 

결론

세 사례를 다 들여다보고 나서 제가 정리하게 된 건 하나입니다. 성장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지만, 감당할 수 없는 속도와 구조로 이루어진 성장은 오히려 기업을 더 빠르게 무너뜨린다는 것입니다. 매출이 늘고 자산이 커지고 인수합병이 이어지는 동안 빚과 고정비, 우발적 위험도 함께 커지고 있었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성장 수치만 보고 박수를 쳐서는 안 됩니다.

제 경험상 기업을 볼 때 앞으로는 "얼마나 크게 성장했는가" 대신 "그 성장을 위해 무엇을 떠안았고, 상황이 나빠졌을 때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를 먼저 보려고 합니다. 잘 나갈 때 얼마나 빛났는지보다, 시장이 뒤집혔을 때 얼마나 버텼는지가 기업의 진짜 실력일 수 있으니까요.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Y3UQfNoLDJw